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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9-26 20:21
<사피엔스(독서토론)>"상상력과 결탁한 인류, 유전자에게 역모를 꾀하다"-26기 강현우
17-09-26 20:21

상상력과 결탁한 인류, 유전자에게 역모를 꾀하다.

 

YDT 26기 강현우

 

올해 2017년 1월.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이자, 다윈이후 가장 뛰어난 진화생물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옥스퍼드 석좌교수 ‘리처드 도킨스’가 한국에 방문했다. 나는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기 때문에 그가 내한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강연을 듣기 위해 기꺼이 15만원 상당의 금액을 지불했다. 강연의 주제는 ‘진화는 예측가능한가’였다. 즉 지금까지 인류의 진화와 앞으로 인류의 진화방향에 대한 내용이었다. 마침 독토팀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이 그때 강연의 내용과 맞아떨어지는 듯해서 잠깐 소개하겠다.

 

이 주제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수렴진화’이다. 이는 자연선택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하나 것인가를 입증하는 개념이기도하다. 수렴진화는 간단히 말하면 어떤 설계가 진화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훌륭하다면 똑같은 설계 원칙이 다른 동물, 다른 출발점에서 다른 진화 경로(독립적 진화)를 거쳐 재차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가령 문어의 눈은 인간의 눈과 매우 흡사하지만 문어에서 인간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다. 문어의 눈은 신경이 빛이 들어오는 방향에서 시세포보다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뒤로 빠져나간다. 이것을 보면 문어의 눈이 인간의 눈보다 공학적으로 합리적인데 이는 문어의 눈이 인간의 눈과 매우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해서 매우 유사한 종착점에 도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는 박쥐가 사용하는 ‘초음파 위치 결정법’이 특정 조류와 돌고래, 고래에서도 독립적으로 발명된 것을 들 수 있다. ‘날개’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같은 진화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며 원래는 다리였을 수도, 지느러미였을 수도 있다. 또는 그냥 돌출된 살덩어리가 진화한 경우도 있다. 다만 같은 ‘날개’의 형태(몸으로부터 길게 뻗어나온 형태)를 가졌다는 각각이 유사한 환경 속에서 진화했고 그것이 유전자의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진화는 특정 환경 속에서 적합한 형태로 진화압력을 받는다. 동물의 경우 그 환경을 분석하면 진화의 방향을 어느정도는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 리처드 도킨스의 답이었다. 빛이 도달하지 못해 칠흑같이 어두운 심해에서 사는 생물의 ‘눈’이 퇴화(이것 역시 진화이다.)하는 것을 예상할 수 있듯이 말이다.

 

생물의 진화방향을 어느정도 예상할 수 있다면, 포유류에 속하는 인간의 진화도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인간이 선택받은 종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 해답의 비밀은 <사피엔스>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는 인지혁명과도 관계있다, 즉 뇌에 해답이 있다는 것이다. 뇌가 발달하지 않은 동물일수록 유전자에 의해 절대적으로 행동의 제약을 받으며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조차 모른 체 행동한다. 유글레나, 짚신벌레처럼 뇌가 거의 발달하지 않은 생물의 움직임은 유전자를 분석하면 거의 정확히 예측할 수 있듯이 말이다. 미생물보다는 뇌가 발달된 다른 동물들도 사실 유전자가 대부분의 행동을 결정한다. 이들은 마치 잘 프로그래밍 된 기계와 같다. 200만년 전의 선사시대의 인류는 유전자가 심어놓은 프로그램(본능)대로 행동하는 별 볼일 없는 동물이었으며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인지혁명 이후 인간은 보지 않은 것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 의하면 인지혁명은 7만년 전이다. 이 연도에 대해서는 맹신하지 않지만 인지혁명이 있었던 것 자체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보지 않은 것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사냥하기 전에 머릿속에서 미리 시뮬레이션 해볼 수 있게 되었으며, 위기 상황을 더 잘 예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생존에서의 이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음을 인지한다는 것은 자신의 본능을 거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동물에서는 절대로 발견할 수 없는 ‘피임’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본능을 거스르는 행동을 한다. 따라서 인지혁명 이후 인류는 점차 유전자에 의한 통제를 뿌리치기 시작했고 ‘문화’에게 인류의 통제권을 맡기기 시작했다. ‘유전자’와 ‘문화’의 공존이 시작된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를 밈(MEME)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그렇다. 우리는 유전자와 문화의 줄다리기 속에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분명 성욕과 같이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기 위한 욕구와 동시에 ‘아무데서나 성욕을 표출해서는 안된다’라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살고 있다. 또한 더 이상 인지혁명이 일어나기 전처럼 배우자의 선택기준이 ‘유전자 후세에 전달할 확률이 높은가’가 아니다. 단적인 예로 여성들이 힘이 세고 근육질의 남자를 선호하는 본능적 ‘경향성’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결혼의 성공여부가 반드시 근육질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또한 시대와 지역에 따라 유행하는 남성상이 변하며 이는 ‘문화’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인지혁명 이전에는 인류역시 환경에 의한 유전적 진화가 일어났지만 유전자의 명령을 거부하기 시작한 후부터는 인류에게 거시적 관점에서의 진화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미시적, 분자 수준의 진화는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유전자가 아니라 문화에 의해 새로운 형태의 진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지구의 물리적 환경, 즉 기후, 수온, 지형 등은 매우 천천히 변화하기 때문에 유전자가 변화해 진화가 일어날 시간이 충분하지만, 문화는 짧게는 몇 달, 길어봐야 몇십년 단위로 변화한다. 특정한 방향으로의 진화가 일어나기엔 이 시간은 지나치게 짧다.

 

근본적이고 긴 시간을 두고 따지고 보면 진화에는 보편적 방향성이 없기 때문에 인류에게 축복도, 재앙도 아니다. 진화는 그저 무심하게 일어났으며 생명탄생과 존재의 방법일 뿐이다. 예컨대 열대우림의 나무 사이를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원숭이에게 진화가 축복이었는지 재앙이었는지 판단할 수 없듯(그 원숭이보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진화가 인류에게 축복이었는지 재앙이었는지 객관적인 판단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축복의 기준을 한 가지 측면으로 제한한다면, 나는 인류가 자유롭게 숲을 돌아다니는 원숭이나, 평생을 여유를 가지고 사는 나무늘보보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바로 인류는 ‘생각하고 있음’을 생각하고, 본 적이 없는 것을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것이다.

 

인류는 ‘과학’이라는 문화를 발달시켰으며 적어도 지구상에서는 유일하게 생명탄생의 비밀, 즉 진화에 대해 알게 된 종이다.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아는 유일한 종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유일하게 자신이 어디로 가야할지를 결정할 수 있는 종이기도 하다. 인류는 이제 막 ‘생명의 비밀’이라는 바다에 발을 담갔다. 얼마 후엔 유전자 가위를 통해 유전자를 원하는 대로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지금도 특정 유전자에 대해서는 유전자 가위로 조작이 가능하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이러한 과정을 ‘인간 강화’라고 표현했다. 인간 강화는 생물학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3D프린터, 사물인터넷이 발전하고 있는데 이러한 모든 것이 사실은 ‘인간 강화’의 일부다. 인류의 모습은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할 것이다. 인류의 진화는 7만년 전 인지혁명 이후 서서히 느려져 거의 정지했지만, 이제 인류는 스스로 변화하려고 한다. 어쩌면 200년, 300년 후에는 지금의 관점에서는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새로운 종이 지구에서의 삶을 영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자는 이에 대해 무서움을 느낀다. 나 역시 그러한 변화에 대해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을 느낀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과학의 발전은 늦춰진 적은 있으나 후퇴한 적은 없다. 샤프나 볼펜을 쓰는 우리가 다시 붓을 사용할 수 없듯이 과학은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걱정만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대비를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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